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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함께 크는 중

“아이 마음을 모른 척한 건, 사실 나도 무서워서였어”

by 수학마법사 2025. 6. 25.

아이는 그날도 문을 ‘쾅’ 닫고 방에 들어갔다. “왜 또 그래?”라는 말이 입술 끝까지 맴돌았지만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식탁에 앉았다. 조금만 건드려도 터질 것 같은 아이의 표정. 사춘기인가 싶다가도, 내가 뭔가 놓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고 사라진다. 그날 밤, 아이가 잠든 줄 알고 문을 살짝 열었는데 이어폰을 꽂고 흐느끼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조용히 문을 닫고 돌아섰다. 그 순간, 마음속이 철렁 내려앉았다.





언젠가부터 아이가 예민해졌다. 사소한 말에도 짜증을 내고, 대화는 늘 문 앞에서 끊긴다. “그냥 말 좀 곱게 해줄 수 없어?”라고 물으면 “나 좀 그만 건드려!” 하고 되받아친다. 이럴 땐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아이의 말에 일일이 반응하는 것도 지치고, 모른 척하는 것도 내 마음이 아프다. 심리상담 선생님에게 물어봤다. “아이랑 잘 지내고 싶은데, 자꾸 부딪혀요.” 그분은 이렇게 물으셨다. “아이와 부딪히는 그 순간, 엄마의 감정은 어떤가요?”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화가 난다. 무시당한 것 같고, 속상하고, 어쩌면 아이가 미워지기까지 한다.





선생님은 말했다. “사춘기 아이의 공격성은, 방어의 다른 이름이에요.”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아이의 말은 거칠고, 표정은 차가워도 그 안에 담긴 마음은 불안과 두려움이다. 엄마가 나를 이해하지 못할까 봐, 내 편이 아니라고 느낄까 봐. 어른인 나는 그런 불안에 눈을 감고 “그만해”, “왜 그래”만 반복하고 있었다. 결국, 아이와 나 사이엔 말 없는 벽만 커져갔다. 한 번은 아이가 “엄마는 내 얘기 안 들어. 맨날 자기 말만 해.”라고 했다. 그 말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그날 이후, 나는 다짐했다. 무슨 말을 해도, 그 말의 ‘표면’만 듣지 말자. 그 속에 숨어 있는 마음을 찾아보자고.





하루는 아이가 “학교 짜증나”라고 툴툴댔다. 예전 같으면 “그래도 가야지”라고 반사적으로 답했을 텐데 그날은 이렇게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어?” 아이는 처음엔 말이 없더니, “친구랑 좀 엉켰어. 말하기 싫어.”라고 했다. 나는 조용히 말했다. “그래, 얘기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그냥 네가 힘들구나 싶었어.” 그날 밤, 아이가 먼저 내 옆에 와 앉았다. “엄마, 근데 나도 좀 이상한 거 같아. 나 요즘 친구들이 다 날 싫어하는 것 같아.” 아, 이 말이 하고 싶었던 거구나 싶었다.





아이의 공격성은 사실 누군가에게 ‘도와달라’는 또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말로 표현하지 못하니 짜증이나 분노로 나오는 것이다. 그걸 그냥 ‘반항’이라고 여기면, 아이의 마음은 더 닫힌다. “왜 이렇게 까칠해?”, “누가 널 그렇게 만들었니?” 이런 말보다 필요한 건, “무슨 일이 있었어?” “네 마음은 어때?” 이런 말들이다. 아이의 마음은 금방 열리지 않는다. 하지만 ‘믿고 기다리는 마음’은 통한다. 우리는 아이에게 매일같이 “내가 네 편이라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





그리고 때로는, “엄마도 너한테 미안했단다”라는 말이 모든 오해를 푸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 내가 잘하려고 했던 말이 아이에겐 상처가 될 수도 있다. 내 기준으로 훈육하려 했던 순간들이 아이에겐 외면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사실 아이의 감정 폭발보다 내 감정 억제가 더 어려웠던 날들도 많았다. 그런 내 마음을 아이 앞에서 솔직하게 꺼내보는 용기도 필요하다.





지금 아이가 힘든 건, 나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어쩌면 너무 사랑해서, 실망하고 두려운 것일 수도 있다. 우리는 부모이기 전에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그리고 아이도 그렇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 다만 이해하려는 노력이 아이 마음에 닿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