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의 갈등은 언제나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특히 초등 고학년이나 사춘기 아이를 키우다 보면 작은 말 한마디에도 아이가 예민하게 반응하고 갑자기 문을 ‘쾅’ 닫고 방으로 들어가버리는 일이 생기곤 하죠. 그 순간, 부모인 우리는 당황하고 때로는 분노와 서운함이 동시에 밀려옵니다. “대체 왜 저렇게 행동하는 걸까?” “나한테 저러는 건 너무 무례한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이 들며 따라 들어가 문을 다시 열고 화를 내고 싶은 충동이 생깁니다.

하지만 저는 어느 날, 그 장면에서 ‘내가 먼저 멈춰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아이의 문 닫는 행동 뒤에 숨은 마음을 제 감정보다 먼저 들여다보기로 결심한 거죠. 그날도 평소처럼, 숙제 이야기를 꺼내자 아이는 짜증 섞인 말투로 대답했고 “왜 매일 똑같은 잔소리야?”라며 결국 방으로 들어가 문을 세게 닫아버렸습니다. 순간, 제 안의 감정이 끓어오르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제가 했던 건 단 한 가지였어요. 숨을 크게 한 번 쉬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아이도 지금은 자기 감정을 다룰 수 없을 테니까요.

아이들이 문을 닫는 행동은 단순한 반항이 아닙니다.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가장 빠르게 ‘끊어내는’ 방법으로 선택하는 것이죠. 그 안에는 무언가 말하고 싶지만 말이 꼬이고, 감정이 앞서버리는 혼란이 담겨 있습니다. 그걸 알게 되니, 문 닫는 소리가 덜 무섭게 느껴졌어요. 오히려 “지금 이 아이도 힘든 거구나”라는 이해의 시선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을 좀 두고, 조용히 아이 방 문 앞에 다가가 말했어요. “엄마는 너랑 이야기하고 싶을 때, 문이 열려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아.” 그 말에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잠시 후 조용히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갈등의 순간마다 ‘내 감정 먼저 잠깐 멈추기’를 연습했습니다. 생각보다 쉽지는 않지만 이 연습 덕분에 아이와의 대화가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어요. 문을 쾅 닫는 아이에게 문제 해결을 강요하기보다 감정을 이해해주는 방향으로 접근하는 것. 그것이 아이에게 ‘부모는 안전한 사람’이라는 신뢰를 주는 첫걸음이 되었습니다.

물론, 문을 닫는 행동이 반복될 때 아이와 한 번쯤은 차분하게 “그 순간 어떤 마음이었는지” 물어보는 대화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질문은 아이가 진정된 후에, 서로 감정을 누르지 않은 상태에서 조심스럽게 건네야 하죠. 그렇게 물어봤을 때 “그냥 너무 답답했어”라는 짧은 한마디라도 들을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아이 마음의 문이 열린 거예요.

우리는 늘 아이의 감정을 ‘이해’보다 ‘교정’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사춘기라는 시기는 감정이 전부일 수밖에 없는 시기이기에 조금 더 기다리고, 조금 더 다가가야 합니다. 우리 아이도 아직 감정을 배우는 중이고, 사실 부모인 우리도 감정을 다루는 법을 매일 배우는 중이니까요.

그날 아이가 문을 열어준 건 제가 ‘먼저 멈췄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더 어른이니까가 아니라, 지금은 내가 더 안정적일 수 있어서. 감정을 다스리는 방식은 가르치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것임을 우리 아이가 내게 다시 가르쳐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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